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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떠남

아이들과 함께한 무계획 제주도 캠핑(ft.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과 여행)

by 제주바램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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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욱 법무법인 대세 대표변호사

이번 5월 5일부터 8일까지 이어지는 연휴를 맞아 일곱살, 네살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제주를 찾았습니다. 기존 제주를 여행했던 방식이 숙소, 갈 곳, 먹을 곳을 모두 예약하고 정해진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텐트를 칠 캠핑장을 예약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습니다. 무계획을 계획으로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차량 선적을 위하여 목포에서 새벽 1시에 떠나 6시 제주항에 도착하는 배를 이용하였습니다. 도착하고 나니, 아침 먹을 시간이었으나 아침거리를 따로 준비하지 않은 탓에 일단 평소 자주 찾았던 고사리 해장국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른 시간임에도 대기번호가 30번이 넘었으나, 다행히 포장은 바로 가능한 상황. 잠시 고민했습니다. 포장을 해가도 음식을 먹을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일단 음식을 포장해서 가게를 나왔습니다.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적당한 곳에 정차하였습니다. 차량 그림자를 그늘 삼아 캠핑테이블을 펴고 가족이 모여앉아 포장해온 해장국을 먹었습니다. 너무나도 훌륭한 식사였고, 진정한 여행이 시작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해안길을 따라 계속 이동하였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최대한 해변 가까이, 최대한 외곽의 길만을 택하여 이동하였습니다. 길을 따라가다 보니 단지개발 공사로 길이 끊긴 곳이 있었습니다. 차량 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골목길도 있었습니다. 맞은편 차량에게 길을 양보하느라 한참을 후진해 준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길이 끊겨 다시 큰 길까지 나왔다 해안길로 되돌아갔던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최외곽 해안길를 고집하며 꿋꿋이 길을 이어갔습니다.

이동하면서 화장실을 찾던 중 해수욕장 공용주차장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화장실을 이용한 후, 주변을 둘러보니 처음 보는 해수욕장이었는데 번화가이면서도 해변이 참 멋지다는 것을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돌려 주변 간판을 보니 함덕해수욕장이었습니다.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백사장에 다시 캠핑테이블을 폈습니다. 저희 부부는 캠핑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두 아이는 아름답고 한적한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것도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습니다.

성산일출봉에서는 햄버거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햄버거는 평소에도 즐겨 먹는 음식이 아니고, 제주에선 더더욱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이지만, 어린이날 아이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찾아보니, 성산일출봉 주차장 바로 인근에서 꽤 유명한 수제햄버거 집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일출봉을 올려다보며 먹는 햄버거는 눈과 입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충분하였습니다. 캠핑장에서 먹을 음식도 미리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시간을 크게 줄인 덕분에, 큰아이와 공을 차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벌의 옷도 많이 준비하지 않았던 터라 빨래가 큰 문제였는데, 셀프세탁방에서 해결하면서 길을 이어갔습니다. 한 시간이면 세탁과 건조가 모두 끝난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계획 없이 외곽 해변도로만을 따라 제주도를 한바퀴 돌다보니, 뜻하지 않은 소득도 있었습니다. 제주답고 아름다운 전망이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붐비지 않은 곳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오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두고 지도에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한 곳만 말씀드리면, 한림읍 월령1길 바로 옆 바다가 바라보이는 석조테이블을 추천드립니다.

지금까지 다녔던 여행을 되돌아보니, 계획과 달성이라는 쳇바퀴의 연속이었던 것만 같습니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모두 계획하고 짜인 각본을 충실히 따라가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여행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계획하고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이고, 그렇지 못하면 뭔가 문제 있는 것처럼 스스로 인식해온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계기로 깨달았습니다. 계획한 대로만 움직이면 계획한 것만 보게 되고,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수많은 즐거움을 스스로 차버리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의 대사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중략)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다 상관 없는거야.” 이번 제주 여행을 통해 ‘무계획’의 진짜 가치를 실감하였습니다. 앞으로 여행에서나 삶에서나 항상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글을 마칩니다.

출처 : 금강일보(http://www.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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